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왜군의 주력 부대가 최초의로 싸운 격전지인 임란북천전적지이다.
1592년 4월 13일 왜병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를 막기 위해 급파된
조선 중앙군(순변사 이일) 약 60여명과 상주판관 권길, 호장 박걸이 소집한 향군 800여명이
왜군(소서행장) 17,000여명과 4월 25일 북천에서 격전을 벌인 곳이다.

입구 좌측의 큰 건물은 상산관(경북 유형문화재 제157호)으로 객사 건물이다.
임진왜란에 소실된 것을 1606년에 재건해서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기록상으로는 '상산지'에 1328년 목사 김영후가 중수했다고 나오니 그 이전에 창건된 객사이다.

 

침천정이라는 작은 정자는 1577년(선조 10년) 상주목사 정곤수가 성주읍성 남문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한 관정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 4년)에 상주목사 한술이 중건하고,
1614년 상주목사 강복성이 천향정으로 개칭하였으며
1693년(숙종 19년)에 목사 이항이 이향정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방의 유지 여러 명이 정자를 사서
현 위치로 이전하고 침천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침천장 앞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어 분위기를 더욱 멋스럽게 한다.

 

임란기념관에는 곽재우의 칼, 왜군의 조총과 함께 임난일기와 남행일기 같은 전쟁 기록물이 있다.

 

 

 

임란기념관 맞은편에 있는 자양재는 좌우대칭이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비각에는 이 곳 북천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 충신(윤섬,박호,이경류)과
2 의사(의병장 김준신,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비가 보호되고 있다.

 

 

 맨 꼭대기 충렬사에는 북천전투에서 순국한 장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홍문관 교리를 지내던 윤섬, 상주목 판관 권길, 사근도 찰방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외 무명열사의 위패 9기가 모셔있다.